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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그린 캠페인] 일본 대표월간지 <세카이> 인터뷰 대담기사 전문 2011-10-19

* 일본의 대표적인 잡지 <세카이(世界)> 11월호에 실린 대담 기사를 소개합니다.

이번 인터뷰는 <세카이>의 ’재생가능에너지-보급에의 조건’이라는 특집기사의 일환으로 11월호 표지에는 최열 환경재단 대표와 이이다 데츠나리 환경에너지정책연구소 소장의 대담기사가 소개되었습니다. <세카이>는 일본 내 대표적인 국제정치평론 잡지이자, 지식인들의 공론지로서 평가받고 있습니다.

특히 11월호에서 재생에너지 중심의 사회 가능성 진단, 재생가능에너지의 현상과 구체적인 과제, 탈원전을 둘러싼 일본의 에너지 정책과 금융정책에 대한 일본 내 지식인들의 목소리를 담고 있습니다. 이와 함께 최열 대표의 ’동아시아 탈핵 에너지 네트워크’의 구상이 함께 소개되었습니다.

국문번역본을 아래와 같이 공유하며, 일어 기사(pp.144--151) 전문을 파일로 첨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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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시아의 에너지 전환을 위한 공동협력을..

대담=최열 환경재단 대표, 이이다 데츠나리 환경에너지정책연구 소장

일시=2011.8.7, 장소=일본 도쿄

 

<3.11 대참사>의 큰 영향

동일본 대지진과 원자력발전소원전 사고는 일본 국내뿐만 아니라 국제적으로도 큰 영향을 끼치고 있습니다. 특히 이웃 한국에서는 일본이 방사능에 오염된 물을 바다로 흘려보내는 것도 큰 문제가 돼 있지만, 한국 자체도 노후화된 것까지 포함한 원전을 다수 가동하고 있는 문제, 그리고 원전 수출 문제 등 일본과 같은 과제를 안고 있기도 합니다.

오늘은 한국 환경재단의 최열 대표를 맞아, 환경에너지정책연구소 이이다 데쓰나리와 함께 이번 후쿠시마 원전사고를 한국을 비롯한 국제사회가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지, 그리고 동아시아에서 에너지 시프트를 실현하기 위한 과제는 무엇인지에 대한 두 분의 말씀을 들어보고자 합니다.

 최열 대표(이하 최): 우리는 지금까지 원자력과 인류는 공존할 수 없다는 주장을 펴왔습니다만, 일본처럼 기술이 발달한 선진국에서 이런 원전 재해가 발생한 사실에 매우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또 미나마타병이나 이타이이타이병 등의 공해에 맞선 싸움을 계속해온 일본에서 사고가 일어난 것도 충격적입니다. 많은 시민운동과 지식인들이 공해문제 해결을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여 온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일본은 민주주의국가라고들 하는데 원전사고 뒤의 정부 위기대응은 실로 멜트다운 상태고, 도쿄전력의 비밀주의적인 대응도 아직까지 개선되지 않고 있습니다. 그 한편으로 일본국민의 대응은 냉정합니다만, 그러면서도 정부나 도쿄전력에 대한 비판은 아직 미미한 듯 보입니다.

 한국에도 언론을 통해 후쿠시마를 비롯한 재해지역의 참상은 알려져 있습니다. 국민들도 충격을 받아 방사능 오염에 대한 불안이 확산되고 있습니다. 우리도 기자회견 등을 통해 한국의 원전문제에 대한 문제제기를 하고 있지만 보수적인 언론은 원전 추진을 지지하는 학자들을 동원해 “우리나라 원전은 일본 원전과는 방식이 달라서 안전하다”는 주장을 되풀이하고 있습니다.

  또 원전이 있는 고리, 울진, 월성, 영광의 주민들 사이에 불안이 커지고 반대집회도 열렸습니다. 이에 대해 정부와 원자력산업 쪽은 일본의 사고가 오히려 자신들에겐 기회가 되는 걸로 여기고 있는 실정입니다. 일본의 원전사고를 계기로 한국의 원전 수출 실적을 늘리고 원자력산업을 발전시켜나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한국 환경재단은 1986년의 체르노빌 사고 이후 20년에 걸친 싸움을 통해 많은 성과를 올렸습니다만, 최근 몇 년간은 원자력을 다시 생각해보자는 기운도 있었고 큰 사고도 일어나지 않아 운동이 침체되고 있었던 것도 사실입니다. 이번 일본 원전사고를 계기로 환경재단과 다른 시민단체 사이에선 다시 위험한 원전 대신 재생가능 에너지를 추진하는 노력을 강화해야 한다는 기운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그런 문제의식에서 6월에 이이다씨를 한국으로 초대했습니다.

방사능에는 국경이 없습니다. 일본의 탈원전을 향한 운동과 연대해서 함께 싸워나갈 수밖에 없습니다.

 

공격에 봉착한 일본의 상황

이이다 데츠나리(이하 이이다): 지금 일본에서는, 말씀하신대로, 내실없는 겉보기만의 민주주의 와 겉보기만의 선진국 부분이 후쿠시마 제1원전의 원자로 건물처럼 무너져 속살이 드러났습니다.

3.11 전의 일본 상황은 대단히 심각해서, 나는 이를 제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전시하의 일본 상황에 곧잘 비유합니다. 당시 전쟁 자체의 정당성을 의심하는 소리들이 압살당했던 것처럼 원자력 그 자체에 의문을 제기하는 소리들이 묵살당한 가운데 정부나 언론이나 전력회사나 어용학자나 모두 원전추진 일색이었습니다.

  자민당 정권 말기의 아베 총리시절 ‘원자력 입국 계획’이 책정됐고, 민주당으로의 정권교체 뒤에도 그것을 거의 그대로 답습해왔습니다. 간 나오토 총리 시절 ‘에너지 기본계획’이 수립됐습니다만 자민당 정권시절과 내용은 다를 게 없었고, 경제산업성 관료들과 전력회사를 중심으로 한 원자력 마을 담합을 통해 작성된 것입니다. 원전을 2030년까지 새로 14기를 더 건설해서, 일본 총전력의 50%를 원자력으로 조달한다는 비현실적인, 망상과 같은 계획을 생각을 했던 겁니다.

하지만 사고 뒤 먹구름이 조금 걷혔습니다. 민주당이나 자민당, 공명당, 그리고 공산당까지도 원자력을 장차 폐기한다 또는 줄여간다는 사고방식이 공감을 얻고 있습니다. 그 배경에는 여론조사에서 국민의 실로 80%나 되는 사람들이 원자력을 즉시 또는 대체에너지가 개발 되는대로 폐기하기 바란다고 응답하는 탈원전 여론이 존재합니다.

  여론이 크게 탈원전 쪽으로 향해가는 한편으로 경제산업성의 핵심부분, 전력회사, 게이단롄=경제단체연합회, 자민당과 민주당 내의 보수적인 정치가들이 현실을 무시하고 있는 점이 지금 특징적입니다. 그들의 주장은 원전을 중단하면 전력이 부족하다, 원전이 없으면 경제가 쇠퇴한다, 기업은 해외로 나갈 수밖에 없다는 겁니다. 원전사고로 갈피를 잡기 어려워지고 있는 그들의 권익을 억지스럽고 무리한 논리로 지켜나가려는 모습이 그대로 드러나고 있습니다.

일본의 과오는 전술 차원의 것이 아닙니다. 과도한 원자력 중심의 에너지 시스템이라는 방향성 자체가 잘못돼 있었던 겁니다. 큰 방향성을 놓고 구상해야 할 사람들이 환경과 경제가 통합되는 21세기의 새로운 상황에 대한 통찰도 철학도 없이 텅빈 채 그걸 밀고 왔습니다. 역시 제2차 세계대전 때의 일본과 겹칩니다만, 원래의 방향성이 잘못돼 있는데도 궤도수정을 할 수 없는 점, 개별 국면에서도 합리적인 사고를 할 수 없다는 점에서도 패전으로 치달았던 과거 군부와 다를 게 없습니다.

 

한국과 일본의 원전은 "같은 지역"에 있다

최: 원전 추진세력은 비참한 사고를 목격하면서 크게 바뀐 여론과 운동을 보고 이젠 제자리걸음을 할 수밖에 없게 됐습니다만, 시간이 지나면서 다시 안전신화를 읊조리며 원전수출을 계속하려 할 것입니다. 그러는 가운데 국민도 잊어버릴 게 틀림없다- 추진세력은 아마 그렇게 생각하겠지요.

일본의 뜻있는 지식인들이 이 문제에 대한 사상과 철학을 밝혀야만 합니다. 오에 겐자부로씨와 무라카미 하루키씨의 발언이 국제적으로도 주목받고 있습니다만, 그런 발언을 에너지 삼아 나아가도록 일본 시민운동과 NGO가 더욱 힘차게 싸워나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일본은 근현대사를 거치면서 히로시마와 나가사키 원폭에다 후쿠시마 원전사고라는 엄청난 참화를 겪었습니다. 몇 번이나 그런 피해를 당하고도 일본이 원자력 에너지와 결별하지 못하고 좌절한다면 한국을 비롯한 다른 지역에서 반핵과 탈원전을 위해 밤낮없이 애쓰고 있는 시민들에게도 정말 큰 타격을 주게 될 겁니다.

일본이 탈원전 쪽으로 방향타를 돌려놓을 수 있을 것인가, 이건 실제문제이며, 또한 일본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방사능에는 국경이 없다고 하셨습니다만 탈원전이란 과제는 국민국가 또는 국가주의적인 사고방식을 초월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즉, 일본 서부지역에 있는 36기의 원전과 한국 동부지역에 있는 15기의 원전은 하나의 관점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습니다. 단지 거리로만 따져 보더라도 규슈와 시마네의 원전들은 도쿄보다 한국에 더 가깝습니다. 일본과 한국의 원전은 ‘같은 지역에 있다’고 생각하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 않을까요.

  마찬가지로 나는 일본의 후쿠시마 제1원전 사고를 ‘3.11 대재난’이라 부르고 있습니다. 일본만이 아니라 인류 공통의 재난으로 보는 시각이 필요하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2001년에 뉴욕에서 일어난 9.11과 같습니다.

  일본과 한국의 운동이라는 관점에서 또 하나 얘기하고 싶은 것은, 한국 군사독재정권 아래서 우리의 운동이 어려운 상황에 빠져 있던 1970년대부터 80년대에 걸쳐 우리를 가장 많이 지원해준 건 일본 시민들과 지식인들이었습니다. 나는 1970년대 후반부터 민주화운동에 참가했으며, 오랫동안 감옥에 갇혀 있었습니다. 그때도 일본 엠네스티의 협력 덕에 환경문제에 관한 책을 차입받아 감방에서 2백 수십권의 책을 읽었습니다. 그 학습 결과로 지금의 내가 있습니다. 일본과 한국의 운동은 더욱 강력하게 더불어 연대해 가야 합니다.

  이이다: 동감입니다. 멜트다운 되고 있는 듯한 일본정부의 사고 대처, 사고를 당하고도 에너지 정책에 관한 본질적인 논의가 정치 차원에서 이뤄지지 않고 있는 상황을 어떻게 바꿔가면 좋을지 생각해 보면 앞서 최 선생이 지적하신 바와 같이 일본 시민운동이 통합돼 있지 않은 점, 그리고 오에씨와 무라카미씨의 사상적 언설을 더욱 잘 활용해야 한다는 점 등은 옳은 지적이라 생각합니다.

일본의 정치적 리얼리스트들, 특 일본의 권력을 쥐고 있는 사람들의 특징적인 점 으로, 거의 규범성을 지니고 있지 않다는 점을 들 수 있습니다. 나는 사고 뒤 많은 관료들이나 어용학자, 전력회사 관계자들과 이야기를 해왔습니다만, 그들 중에는 3.11사고 따위는 존재하지 않았다는 듯 얘기하는 사람조차 실제로 있습니다. 철학적, 또는 윤리적인 규범성도 말도 갖고 있지 않은 사람이 권력만은 갖고 있다, 본질 적으로는 그것을 바꿔가야만 한다, 그때그때의 정책적인 레벨에서는 의견이 나뉘더라도 근저에서 철학적인 사상을 공유하는 기반은 ?塤?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근저에서 공유하는 규범성은 지속 가능성이라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정치적 리얼리스트들 중에는 원자력 필요론에서 벗어나지 못한 사람들이 있습니다만, 이제부터 원자력이 감소해 가는 건 피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그 전제 위에서 단기적인 연결 에너지를 어떻게 확보해 갈 것인지, 경제에 끼칠 마이너스 영향을 어떻게 피해 갈 것인지 실질적으로 논의해 가야 합니다. 환경주의 입장은 아니지만 경제 합리주의에다 현실주의적인 사람들이 머조리티다수를 점하고 있습니다. 그들도 중간 쪽으로 끌어들여 망상적인 원자력 추진파 사람들을 마이너리티소수로 만들어 가야 한다고 봅니다. 즉각적인 탈원전과 단계적인 탈원전 사이의 거리를 현시점에서 치밀하게 메워가야 할 필요는 없겠지요.

EU가 석탄철강공동체로부터 경제적 결속을 하기 시작해 유럽공동체로 나아갔듯이, 동아시아 또는 동북아시아는 자연 에너지 공동체라는 협력관계를 출발점으로 삼아야 하며 그것을 위해 정부·민간·NGO 차원에서 대처해 나간다면 성공할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합니다.

 

  동아시아에 탈 원전 네트워크를!

- 각국에서 원자력 개발이 진행돼 온 배경의 하나로 국가주의가 존재합니다만, 이번과 같은 규모의 원전사고가 한 번 일어나면 방사능은 국가의 틀을 넘어버립니다. “우리나라 원전은 안전하다”는 얘기가 한국에서 나오고 있다고 하는데, 그건 예전에 체르노빌 사고 뒤 일본의 원전 관계자들한테서 듣던 얘기이기도 합니다. 각국이 안고 있는 과제를 극복하기 위해서라도 공동의 네트워크를 만들 필요성이 있지 않을까요?

최: 나는 이이다 선생의 동아시아 자연 에너지 공동체 구상에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실제로 우리는 같은 과제에 직면해 있습니다.

일본에서도 한국에서도 원자력 추진세력은 핵에너지의 안전성과 비용 면에서의 우위를 주장해왔습니다만 이번 원전사고로 그런 것들이 허구였다는 사실이 분명해졌습니다. ‘클린 clean’이라는 프로파간다도 파탄이 났습니다. 원자력의 위험한 실태를 더욱 강렬하게 제시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런 점에서 두 나라 시민운동이나 지식인들의 공감대를 얻어내는 게 충분히 가능하다고 봅니다.

문제는 한국과 일본만이 아닙니다. 같은 이웃인 중국에서도 14기의 원전이 가동 중이고 또 27기를 추가로 건설하고 있습니다. 전 세계에서 건설계획이 세워져 있는 원전들의 대부분을 한국과 일본, 중국 세 나라가 차지하고 있습니다.

나는 8월에 열린 원수폭금지 세계대회에 한국 대표로 참가해 세 가지 제안을 했습니다. 앞서 이이다 선생이 제안하신 동아시아 자연에너지 공동체와 같은 발상입니다만, ‘동아시아 탈원전 네트워크’를 만들자는 제안입니다. 제1단계로 한국과 일본에서 공동으로 탈원전 네트워크를 만듭니다. 동아시아를 생각할 때는 북조선북한 문제가 심각한 화두로 등장합니다만, 북한의 에너지 사정은 매우 어려운 실정입니다. 경수로 지원이라는 게 국제적인 합의하에 추진돼 왔습니다만 풍력 등의 재생가능 에너지 지원 쪽으로의 전환을 검토해야 합니다.

중국은 한국보다 더 많은 원전건설을 계획하고 있기 때문에 한국과 일본에서 탈원전을 위한 정보를 제공하는 등의 지원작업을 벌여나갈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선 나는 한국에서 정치가, 지식인, 경제인 100명을 모아 탈원전 네트워크를 만들 생각입니다. 만약 가능하다면 국경을 넘는 네트워크의 일환으로 일본에서도 100명의 대표적인 사람들이 참여하는 탈원전 네트워크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요. 또 중국이나 유럽에서도 그렇게 조직을 해서 3·11을 상징하는 311명의 탈원전 네트워크를 만들면 어떨까요. 그걸 위한 첫걸음으로 일본과 한국에서 기획회의를 꾸려나가자는 제안을 하고 싶습니다.

하나의 계기가 될 수 있는는 건 2012년 3월11일입니다. 그 날을 기해 동아시아 탈원전선언 등의 성명을 발표하거나 공통 로고나 심벌마크, 그리고 공동펀드기금를 만드는 것도 좋겠지요.

나는 35년간 환경문제와 싸워 왔습니다만 이제부터 남은 인생은 탈원자력과 재생가능 에너지로의 전환, 기후변동 대책, 그리고 아시아 환경네트워크 구축에 바칠 생각입니다. 

이이다 : 최 선생과 나는 이미 큰 방향성에는 합의했다고 봅니다. 먼저 일본 상황에 대해서 얘기하자면, 사회운동에서 직접행동이나 데모가 아주 활발한 한국에 비해 일본에서는 3·11 뒤에야 데모가 활발해진 단계입니다. 또 정치 분야에서도 권력의 중심에 있는 전력회사, 경제산업성 관료, 대형 언론사, 어용학자 등은 원자력추진 가치관을 그대로 지닌 채 전혀 미동도 하지 않고 있습니다. 3·11 직후에는 많은 사람들이 충격을 받고 원자력은 이제 지긋지긋해, 하는 분위기가 있었습니다만 최근 다시 예전으로 ?뭬튼“?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일본에서 탈원전 네트워크를 꾸려 갈 경우 정치를 실제로 움직일 수 있는 큰 무브먼트로 만들어가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냉정하게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자연에너지 공동체와 같은 큰 운동을 벌여나간다는 걸 전제로 한다면 3·11 이전부터 원자력을 비판해온 사람들만으로 탈원전 네트워크를 구성할 게 아니라 머조리티다수가 참가할 수 있는 틀을 만들 필요가 있습니다. 이미 탈원전을 지향하는 여론이 다수파가 돼 있기 때문에 그것은 가능하고 또 그렇게 하지 않으면 정치를 바꿀 수 없습니다. 마이너리?세寗? 상태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그게 일본사회의 과제입니다.

일본에서 3·11 이전과 명확히 달라진 게 3가지 있습니다.

첫째, 방사능 오염에 관해 시민 차원에서 불안이 고조되고 있습니다. 오히려 지식인 차원에서는 양극화하고 있는데, 일반시민 특히 아이들을 키우는 젊은 엄마들을 중심으로 방사능에 대한 불안이 분노로 바뀌고 있습니다. 방사능 오염 문제는 일본인이 원전문제에 분노하면서 대처하도록 만드는 획기적인 일이 될 겁니다.

둘째, 젊은이들이 큰 관심을 갖고 참가할 수 있게 된 겁니다. 인터넷이나 트위터, 페이스북 등의 새로운 사회적 툴매체와 연동해 폭넓은 층에서 원전문제, 에너지 문제에 대한 관심이 확산되고 있습니다.

셋째, 원자력정책에 관한 국민투표 등 자신들 스스로 논의해서 결정하고 싶다, 참가하고 싶다는, 정책 그 자체에 관여하려는 움직임이 퍼져가고 있는 것입니다.

마그마처럼 시민사회 전체가 변해가고 있는 부분을 확실히 붙잡을 수 있다면 커다란 변화가 일어날 것이라 생각합니다.

내년 3월11일을 목표로 한국과 일본과 중국 등에서 탈원전 네트워크를 만들기 위해 구체적으로 어떻게 하면 좋을지, 우선 작전회의를 한국이나 중국에서 오는 참가자들과 함께 열어서 구체적인 로드맵을 만들어가면 될 것입니다.

 

한국의 원전과 여론

최 선생에게 여쭙고자 하는데, 후쿠시마 원전사고 이후 한국에서는 어떤 여론상의 변화가 일어났습니까. 또 한국 민주화운동을 이끌어온 분들 사이에선 원자력발전에 관한 생각이 일치하는지요.

최: 한국에서는 3·11 대재난이 일어나기 전에는 원자력에 찬성하는 사람이 다수였습니다만 사고 이후, 특히 원전 입지지역에서는 반대의견이 압도적으로 많아졌습니다. 부산 인근에 고리원자력발전소가 있습니다. 사고 뒤 조사에서는 65%의 사람들이 원전이 위험하다고 응답했고, 43%가 노후화한 1호기는 즉각 폐기해야 한다고 응답했습니다.

강원도에서는 신규 입지계획이 있었으나 4월 지방선거에서 원전에 대한 태도를 분명히 하지 않았던 한나라당 후보가 패배하고 반대 주장을 폈던 민주당 후보가 승리했습니다.

한국의 원전반대 시민운동은 1986년 체르노빌 사고 이후 고양돼 왔습니다. 환경운동단체가 벌이는 운동과 원전 입지지역 주민 투쟁을 중심으로 전개돼 왔다고 할 수 있지요. 사용후 핵연료의 최종 처분장을 어디에 짓느냐, 후보지역이 떠오를 때마다 주민투쟁이 일어나 건설을 저지해왔습니다.

민주화운동을 이끌어온 세력은, 유감스럽게도 일치단결해 원전에 반대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극히 일부이긴 합니다만 원자력은 경제적으로 싸게 먹힌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민주화운동 참가자와 반원전운동 참가자가 반드시 일치하진 않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전국 여론을 보더라도 후쿠시마 원전사고 전에는 원전 유치에 찬성하는 사람이 다수였습니다만 사고 뒤에는 60%가 반대로 돌아섰습니다. 앞으로 방사능 오염 문제가 더욱 심각해지거나 피해상황을 자세히 알게 되면 한국내 원전반대 목소리는 더욱 커질 가능성이 있습니다.

한국에는 ‘원자력문화재단’이라는 게 있는데, 전기요금의 일부를 걷어 원자력발전 안전성을 선전하는 사업을 전개해왔습니다. 그것을 해체하는 것이 우리의 당면 목표입니다. 재단은 1992년에 만들어졌고 전기요금의 3.7%가 그 운용자금으로 쓰이고 있습니다.

이이다: 일본의 ‘원자력문화진흥재단’과 활동내용이 거의 같군요. 그렇지만 3.7%라니 심하군요. 일본에서는 전력업계의 연구기관인 전력중앙연구소가 전기요금의 0.2%를 쓰고 있습니다.

최: 막대한 돈입니다만, 모두 그대로 사용하는 게 아니라 기금을 만들고 거기에서 100억원, 일본돈으로 7~8억엔을 그 사업에 쓰면서 원자력은 안전하다는 선전을 전개하고 있는 겁니다. 앞서 소개했습니다만 민주화운동에 참가한 사람들 대부분은 지금도 반원전을 주장하고 있는데, 이런 선전사업 영향으로 입장을 바꾸는 사람이 나오고 있는 겁니다.

한국의 정당상황을 보면 민주당에는 다양한 의견이 있지만 안전성을 고려하면 원자력에 의존해선 안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늘고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또 민주당 손학규 대표는 재생가능 에너지 도입을 추진해 가겠다는 자세인데, 적어도 원전 신규 입지에 대해서는 반대를 표명하고 있습니다.

한나라당은 “원전은 값 싸고 깨끗하다”는 이유로 추진파가 대부분을 점하고 있었습니만 역시 3·11 대재난 이후 더 안전한 원전이 필요하다는 논의가 주류를 이루고 있습니다. 원전이 위험하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일부 있습니다.

2000년 총선 때 한국의 1000여개 시민운동이 연대해서 낙선운동을 전개했습니다. 나는 그때 그 운동 상임공동대표를 맡았습니다. 그때의 경험을 살려 내년 4월 총선과 내년 말의 대통령선거에서는 탈원전과 재생가능 에너지를 쟁점화해 보려고 합니다.

이이다: 일본에는 2대 정당제 등 정치구조에 관한 큰 문제가 있습니다만 그와 함께 2대 정당 내부 깊숙이 존재하는 관료 시스템도 큰 문제입니다. 간 나오토 정권 때 경제 산업성은 총리관저의 지시에 따르지 않고 하나의 독립국인 것처럼 움직였습니다. 거기에 쐐기를 박는 정치가 필요한데, 민주당은 그렇게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민주당이 실패한 건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옛 동맹계의 대기업과 전력 시스템에 단단히 자리 잡고 있는 암반이 당내에 존재하는 것입니다. 또 하나는 관료주도 정치에서 벗어나겠다고 노래를 불??왔음에도 관료에 대해 아무 힘도 쓰지 못해 정치주도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것입니다.

각 정당 상황을 보면 하나의 균열이 보입니다. 낡은 세대로 기득권익에 집착하는 사람들과 비교적 젊고 합리적인 사고방식을 지닌 사람들과의 세대간 대립입니다. ‘합리적’이라곤 해도 그 이데올로기는 시장근본주의거나 네오 내셔널리스트일 수도 있는 모자이크 상황이긴 합니다. 이 상황을 전제로 해서 어떤 형태로 정치를 규합해 가는 게 좋을까. 리버럴하면서 그린green를 표방하는 세력이 각 정당들에서 나타나고 있는 균열을 규합할 수 있는 존재가 될 수 있을까. 일본의 전후정치가 제대로 소화하지 못했던 네오 내셔널이나 네?? 리버럴과 어떻게 사귈 것인가. 어느 것이나 모두 아주 확고한 자세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 오늘 정말 감사합니다.

[사회= 본지 편집부 구마가야 신이치로]

 

* 일본 이와나미 문고의 월간지 <세카이世界> 11월호의 기사 목록 http://www.iwanami.co.jp/sekai/